
“저 사람은 타고난 투자자야”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가 피터 린치는 타고난 투자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투자 감각이나 기술은 염색체를 통해 타고나는 감각이 아니라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것이라 말한다.
한 사람의 진로를 만들어가는 일도 그런 투자와 닮았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 투자를 하듯, 자신 삶의 행복을 위해 ‘선택’하고 ‘에너지’를 쏟는 과정이 닮았기 때문이다. 투자는 나의 통장잔고를 위한 일이고, 진로는 나의 삶을 위한 일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서 지금 당장의 행복을 잠시 미뤄두고 공부하는 일, 즉 교육도 미래가치에 대한 투자다. 교육도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 행위다. 교육의 목적은 한 사람의 진로라는 항해길을 돕기 위함이다. 모든 교육은 개개인의 더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그 중 직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교육이 좁은 의미의 진로 교육이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다운 삶이라고 교육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가라는 삶의 내용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테지만, 인간다운 삶의 형식에 대해서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바로 경제적 기반이다. 지속가능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인간은 일하고 투자를 한다. 일도 투자 행위다. 일이란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한 행위다.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특정한 일을 하는 행위를 직업이라고 부른다.
진로 문제란 직업에 관한 문제다. 인간이 직업을 가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취업과 창업이다. 학생의 진로는 세 가지다. 진학, 취업, 창업이다. 진학 이후의 진로는 다시 창업과 취업으로 나뉜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도 일시적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을 물려받을 오너의 아들도 일을 배우기 위해 부모의 회사에 잠시 취업을 한다. 진로 선택에서 취업은 필수 과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을 가지는 일은 곧 취업이라고 생각한다. 진로의 문제는 결국 취업의 문제다. 수많은 강이 결국 바다에서 만나듯 수많은 진로는 결국 취업 문제와 만난다.
진로 교육의 내용은 직업, 취업, 일로 구성된다. 진로 교육의 시작은 직업이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 자신이 원하는 직업, 자신이 가치를 느끼는 직업을 찾기 위해 세상의 다양한 직업에 대해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진로 교육은 이 지점에서 끝난다. 진로 교육이 개개인의 더 나은 삶이라는 실질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다.
직업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 직업을 가지려면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직무 역량이란 지식이나 스킬을 넘어서는 무엇이다. 한 사람의 캐릭터를 결정짓는 인성, 가치관, 세계관,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직무 역량의 토대다. 그리고 자신과 대상을 성찰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능력인 메타 러닝(meta-learning)역량이 직무 역량의 핵심이다. 이런 능력은 단순 암기나 흉내내기로 갖출 수 없다. 비바람에 철이 산화되듯 삶과 교육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한 사람의 내면에 조금씩 쌓여가는 역량이다. 진로 교육에 본질적 의미의 <일 교육> 빠지면 안 되는 이유다.
진로 교육에는 형식과 내용이 있다. 세상에는 이러 이러한 직업이 있고, 그 중에 너는 무엇을 선택할래?로 접근하는 것은 진로 교육의 형식이다. 다양한 직업을 이해하고, 직업 체험을 하는 것, 자신의 직업 적성을 아는 것 등은 진로 교육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삶의 형식보다 삶의 내용이 중요하듯, 진로 교육도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진로 교육의 내용은 두 가지다. 진로 선택의 대상인 직업과 진로 선택의 주체인 자신이다. 나와 세상을 연결 짓는 과정이 삶이다. 나와 좋아하는 사람이 연결되면 우정이 되고, 사랑이 된다. 입사 지원이란 나와 기업을, 나와 일을 연결 짓는 일이다. 진로란 나와 세상을 연결짓는 일인데, 진로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나도 모르고, 세상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진로 교육의 내용이란 자신에 대한 발견과 세상에 대한 배움이다. 이 둘을 합쳐 교육이라고 부른다.
진로란(삶이라고 해도 되겠다.) 나와 대상(직업, 세상, 타인)을 연결 짓는 과정이데, 문제는 나도 잘 모르고 대상도 잘 모르니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연결 지을 지 잘 모른다면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하나 하나 배워나가면 되는데, 그런 기회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공부를 못하면 인생을 포기하고, 좋은 대학을 못 가면 인생을 포기하고, 첫 직장이 좋지 못하면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진로 교육은 선택지를 배우는 교육, 선택을 잘하게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선택지를 만들어가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런 힘을 진로 역량이라고 부르고 싶다. 진로 역량이란 피상적 직업의 이해나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직업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어떤 직업도, 어떤 일도, 어떤 삶의 문제도 해결하려는 태도다. 이런 힘을 기르려면 앎을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교육이란 삶에 대한 투자다. 지식과 정보를 머리에 쌓는 것은 투자가 아니다. 돼지 저금통과 붙박이장에 돈을 묻어 두는 일은 투자가 아니다. 손실에 대한 두려움도 이익에 대한 환상도 버리고 내가 믿는 가치에 소중한 돈을 투자할 수 있는 담담한 실행력이 요구된다. 진로 역량을 기르는 방법은 투자와 비슷하다. 나를 바깥으로 꺼집어 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말, 글, 행동 등을 통해 나를 세상에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표현되고 설명된 나를 해석하는 세상의 눈과 목소리를 또한 담담 대하며 상호작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바로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의 시작은 해야할 것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의미있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교육에서의 의미있는 상호작용은 배움과 성장으로 이어지고, 투자에서의 의미있는 상호작용은 이익으로 이어지고, 기업 행위의 의미있는 상호작용은 성장으로 이어진다. 진로 교육은 나와 세상의 상호작용을 위한 근육을 키워주는 연습이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자신의 말에 대한 피드백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고 말하는 반복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이 과정은 기업에서 그토록 원하는 실질적 직무 역량이기도 하다. 나를 표현하는 것은 자신 삶에 대한 투자다. 그런 투자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진로 교육이라 생각한다.
투자란 미래 가치에 관한 문제다. 진로 교육 또한 가치에 대한 문제다. 어떤 생각, 어떤 선택, 어떤 생각과 행동이 내 삶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일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삶의 가치는 누구도 대신 정의하거나 말해 줄 수 없다. 내 삶의 가치는 오로지 나의 힘으로 찾아 나가야 한다. 삶이 고독한 이유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치열한 물음과 대답의 과정이 진로 교육의 본질적 내용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미 있는 내용을 갖추려면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근육을 키우듯 중력과 끝없는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진로가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로 교육은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요양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서도 고독하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신만의 진로를 찾으려면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사무치는 고독감과 무엇이든 배우려는 겸손한 개방감이라는 두 날개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다. 목표를 당장 알지 못해도 날개짓을 연습하며 근육을 키우고, 이리저리 날아 다니다 보면 목표, 이유, 의미, 가치 같은 것이 저절로 생긴다. 어떻게 해야 가장 높이 나는지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교육이 아니라, 10센티라도 나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 진로 교육이라 생각한다. 진로는 곧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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